Espresso
델리 스파이스 (Deli Spice) / 2003.01.01 발매
델리 스파이스 (Deli Spice) [Espresso]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는 김민규, 베이스와 보컬을 맡고 있는 윤준호, 드럼과 가끔씩 트럼펫을 연주하는 최재혁. 세 명을 멤버로 하는 델리 스파이스는 5집 [Espresso]를 발표했다.
에스프레소라면 쓰고 깊은 맛의 커피가 아닌가. 과연 어떤 음악들이 실려있길래?
모두 12곡이 담겨 있으며 이 앨범에서는 최재혁의 곡도 몇 곡이나 들어 있다. 노래 제목을 쭉 훑어보니 이들의 동화적인 상상력이 이제는 노골적으로 드러나는구나 싶을 정도로 범상치 않다. 하지만 동화적인 제목에 비해 노래들은 다소 묵직하고 강하다.
최재혁의 작품인 '날개달린 소년'은 신들의 마을에서 쫓겨난 큐피트의 이야기이다. 보컬에 다양한 이펙트를 입히고 기타 솔로 연주를 거꾸로 돌려 들려주는 등 독특한 사운드를 구성하는, 경쾌한 업템포의 곡으로 가사가 의미심장하다. 어린 왕자를 떠나보낸 장미의 외로움을 노래한 곡인 '어린 나의 왕자에게'는 역시 최재혁의 작품으로 빠르지 않으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피아노 연주가 기본이 된다. 윤준호의 작품인 '기치죠지의 고양이'는 불길한 느낌이 엄습하는 곡으로 클라이맥스의 피아노 연주 또한 이 곡의 카리스마에 한 몫 한다. 핀란드 그룹 레모네이터를 연상시키기도.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재주가 있는 김민규는, 1집에서도 못생긴 개 챠우챠우를 노래하더니 이번엔 최초로 우주를 비행한 개, 라이카를 노래한다. 1957년 구 소련이 쏘아 올린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2호에 탑승했던 라이카를 노래하면서 냉소를 보내는 '우주로 보내진 라이카'는 김민규와 최재혁이 프로그래밍을 맡아 별다른 감정을 싣지 않는 김민규의 보컬에 잘 어울리는, 간결하면서 무심한 연주를 들려준다. 영화 [재미있는 영화] OST에 수록된 바 있는 '환상특급'은 윤준호와 김민규가 곡을 나눠 부른 보기 드문 노래이고, 윤준호의 프로그래밍으로 보다 일렉트로닉한 사운드를 들을 수 있다.
그밖에 델리 스파이스 버전 희망가 '숨겨진 보석', 키보드 연주가 한가로운 '저도 어른이거든요', 아르페지오로 연주되는 키보드로 슬프면서도 신비로운 '처음으로 우산을 잃어버렸어요' 등이 실려있다.
델리 스파이스는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하고 가졌던 인터뷰에서 "사실 이 땅에서 다음을 기약한다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했다."라며 비장한 각오를 나타낸 바 있다. 그리고 또 어떤 인터뷰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밴드가 가능성만 보여주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씬을 이끌면서 성장하고, 발전하고,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롱런을 하고 싶고, 현재진행형이고 싶다."아마추어 밴드로 시작했던 델리 스파이스는 욕심 많은 롱런을 선택했고, 선택한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