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

Peter Gabriel / 2018.05.18 발매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제네시스의 창설자 피터 가브리엘. 1975년 제네시스를 탈퇴한 뒤 솔로 활동을 펼치며 뛰어난 뮤지션으로 자리잡아온 그가 10년만의 정규 신작 [Up]을 선보였다. 여전한 실험 정신을 보이고 있는 그를 만나보자.새 앨범을 만드는데 왜 10년씩이나 걸렸냐고 묻자 피터 가브리엘의 대답은 자기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소리없이 증발해버린 듯 하군요.” 마치 반지의 제왕 2편을 찍기 위해 연습을 하는 마법사 갠달프처럼 보이는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가브리엘이 말을 한다. “제 생각엔 저는 앨범을 만드는 과정을 더 즐기는 것 같아요. 그 앨범을 팔기 위해 돌아 다니는 세일즈맨이 되는 것 보다는 말이죠. 그리고 앨범을 만드는 것은 마치 안에 있는 것을 게워내는 것과 같아요. 토하지 않으려면 멈춰서서 한발짝 물러설 필요가 있죠. 그게 레코딩 작업이 늦어지게 만드는 이유죠.”그래서 결국 지난번 앨범 [Us] 이후 10년이란 세월이 흘러버렸다. 앨범이 발매되었을 당시는 존 메이저가 영국 총리에 당선되고 존 스미스가 노동당 당수로 새로 선출되었을 무렵이었다. 오아시스는 아직 데뷔 앨범을 내기 전이었고 콜드플레이는 반바지를 입은 어린애들이었다.자, 이제 새 앨범 [Up]이 선보인다. 이건 아주 도전적인 특징을 가진 피터 가브리엘의 앨범이다. 의미깊은 노래들로 가득차 있고 복잡한 편곡으로 가득하며 누스라트 파테 알리 칸(Nusrat Fateh Ali Khan)과 유수 앤두르의 밴드 등의 참여로 미묘한 월드 뮤직의 영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미 5년 전에 세상을 떠난 누스라트 파테 알리 칸이 참여했다는 건 이 앨범의 작업 기간이 얼마나 길었나 하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난 10년간 피터 가브리엘이 해변에서 일광욕이나 하고 빈둥거렸다는 얘기는 아니다. 가브리엘은 지난 6월, 지난 몇 년간 그의 조력자였던 메이브(Meabh)와 재혼했다. 가브리엘의 집이 있는 사르디니아에서 결혼식을 올린 이들은 그들 사이의 한 살 짜리 아들 아이작(Isaac)과 함께 거의 한 달간의 신혼여행을 가졌다. “최근 몇 년 들어 처음으로 그렇게 오래 쉬어본 것 같아요.”그는 그 증거로 보통 매일 자신의 회사인 [Real World] 스튜디오에서 점심 무렵부터 한 밤중 까지 일을 하곤 한다는 사실을 예로 들었다.그럼 도대체 그 안에서 가브리엘은 뭘 하는 걸까? 일단 이번 앨범 [Up]에 수록될 곡들을 고르는 작업을 예로 들면 그 자신이 만들어놓은 130여 곡의 아이디어들 중에서 추리는 작업을 해냈다. 다른 작곡가가 끼어들 공간은 없었고 덧붙여 그가 ‘우회’라고 부르는, 다른 작업들을 하느라 시간을 잡아먹는 경우가 있었다. 이를테면 ‘밀레니엄 돔 공연’의 음악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사운드트랙 작업, 다른 뮤지션들과의 협연 등등...가브리엘은 또한 그의 작업 방식이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도 인정한다.“그건 아주 복잡하고 허둥대야만 하는 작업이지요. 마치 나선형의 공간에서 안쪽으로 중심점을 찾아 헤매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제 경우엔 그것이 효과가 있어요.”언젠가는 그가 비틀즈의 프로듀서였던 조지 마틴 경에게 자신의 작업방법을 설명해줬는데 조지 마틴은 그것이 쓸모없는 일이라며 깜짝 놀랐다고 한다. 마지 못해서이긴 하지만 드디어 앨범이 마무리되었다(그는 음반사의 재촉이나 곧 있을 미국 투어 등이 없었다면 아마도 아직까지 그 앨범을 붙들고 있었을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Real World] 스튜디오 건물 제일 윗층의 작은 방에서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세일즈맨의 역할을 하기 위해 앉아있다.목가적인 분위기의 교외 지역인 윌트셔(Wiltshire)에 자리한 이 스튜디오는 오래된 방앗간을 개조해 만든 것으로 조그마한 강과 오리가 떠 다니는 다소 구식 스타일의 연못이 있다. 정기적으로 지나 다니는 고속철도의 굉음만이 정적을 깨곤 하는 곳. 또 한 대의 기차가 지나가자 철길 옆에 스튜디오를 마련하는건 아주 괜찮은 아이디어였다고 가브리엘이 농담을 던졌다. 기차 소리가 멀어져가자 아주 고독감을 주는 외로운 트럼펫 소리가 열린 창문 틈으로 스며들어왔다. 아마도 누군가가 잔디 위에서 연습하기 좋은 날씨라고 생각한 듯 싶었다. 한 해 동안 매일 이 스튜디오에는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여러 뮤지션들이 북적거리곤 한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아이슬랜드 밴드인 시구어 로스(Sigur Ros)가 새 앨범의 믹싱 작업을 하고 있었고 또 다른 방에는 앨리슨 골드프랩(AlisonGoldfrapp)이 투어를 위해 연습을 하고 있었다. 세 번째 방에는 쿠바의 젊은 밴드 아세레(Asere)가 있었다. 이처럼 몰려드는 음악인들은 자연히 가브리엘 자신의 작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여기서는 엄청나게 다양한 음악들이 창조되고 있고 다른 뮤지션들이 작업하는 것을 듣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