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urs...

David Bowie / 1999.10.01 발매

이제 그의 역량은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능력'이 아니라 그것을 저 위에서 그윽하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에서 비롯되는 것만 같다.

새로운 천년을 앞두고 발표된 [Hours...]는 그러한 사실을 드러내주기라도 하듯, 현대적인 요소와 과거의 사운드가 적절히 조화된 빼어난 사운드를 담고 있다. (전작들에서와는 다른 느낌으로) 두드러진 샘플링과 키보드 사운드는 보다 몽롱하고 풍성한 분위기를 이루어내는데, 다소 탁해진 데이빗의 목소리를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뮤지션에게 쌓여 가는 세월의 무게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느릿하게 전개되는 템포, 자극적인 사운드의 배제, 부드럽고 기복이 없는, 하지만 단숨에 귀에 들어오는 멜로디 등 전체적으로 전작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지만 그것은 결코 음악적 아이디어의 결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이 '낭만적인' 사운드는 그의 관조적인 세계관의 반영이다. 흡사 첫 앨범의 'Love You Till Tuesday'와 대칭을 이루고 있는 듯한 첫 곡 'Thursday's Child'의 한없는 포근함이라든지, 어쿠스틱 기타와 몽롱한 슬라이드 기타의 어우러짐으로 전개되는, 나른한 오후의 낭만적인 감상(感想)을 연상케 하는 'Seven'과 'If I'm Dreaming My Life', 그리고 은은한 멜로트론 사운드가 멋지게 울려 퍼지는 'Survive' 등에서 느껴지는 감성이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닌가.

더할 수 없이 안정된 이 사운드는 그가 이후 지속하게 될 또 다른 음악들의 전초(前哨)를 이루고 있는 것만 같다. 데이빗 보위와 그의 오랜 음악적 동지인 기타리스트 리브스 가브렐즈의 프로듀싱으로 완성된 이번 앨범의 곡들을 듣고 있으면 최근의 영국 음악계의 뿌리를 다시 한번 짚어 준 느낌이 강하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성향의 개성적인 음악이 주를 이룬다. 이번 앨범을 작업하면서도 그는 오린 잡지의 글이나 자신의 글들을 조합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조합된 단어들은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고 이 이야기들의 주인공에 보위 자신이 투영되었고 우리는 그의 또 다른 판타지 속으로 들어가 허우적 거리는 즐거움을 맛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