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e Free Or Die Hard (Original Motion Picture Soundtrack)

Marco Beltrami / 2007.07.02 발매

세계 최고의 영화음악 전문 레이블 <바레스 사라방드> (VARESE SARABANDE)가 선사하는 <다이하드 4.0 OST>의 진정한 매력!!

프랜차이즈 3호점 <다이 하드 3>(Die Hard With a Vengeance)이후 새로운 장소와 메뉴를 찾아 배회하기를 어느덧 12년. 폐쇄적인 통풍구를 누더기 난닝구(러닝셔츠)바람으로 누비며 사력을 다해 인질협상과 구출에 나선 고층빌딩을 준거지로 공항에서 악한을 자처하는 군바리들과 한바탕 대격전을 치른 뒤, 그 자신이 인질이 되어 도심 속을 종횡무진 동분서주하며 죽을 고생 사서하던 만년 국민경관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 분)이 실로 오랜만에 복직했다.

2편까지 인질이 된 아내를 구출해 최후엔 기쁨의 재회를 나누던 부부관계는 마침표를 찍었고 다 큰 딸 감시하랴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머리털 한 올 남지 않은 대머리 꼰대아빠로 변모한 맥클레인은 이번에도 역시 여간해선 죽지 않는 불멸의 주인공의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며 그야말로 악당이 학을 떼게 만든다.

21세기 동시대적 사이버테러리스트를 새로운 공공의 적으로 설정한 <다이 하드 4.0>(Live Free Or Die Hard)은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디지털시대에 열혈마초 아날로그 캐릭터가 여전히 영화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음을 브루스 윌리스라는 노장배우를 통해 다시금 확증한다.

‘다이하드‘오리지널로 흥행과 비평에서 연재될 연작의 성공적 데뷔를 알리고 2편을 맡은 레니 할린에 이어 세 번째 시리즈에서 감독에 복직됐으나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로 다소의 실망감을 안겨준 존 맥티어넌(John McTiernan)의 대를 이은 연출자는 렌 와이즈만(Len Wiseman)이다.

최근 아내 케이트 베킨세일을 흡혈여전사로 내세운 <언더월드> 시리즈로 기술적 영상미와 액션에 두각을 나타내 온 그가 최신 시리즈의 감독에 임명된 만큼 전작 <언더월드2: 에볼루션>의 스텝들을 대동하고 나섰다. 영화음악을 책임진 마르코 벨트라미(Marco Beltrami)도 마찬가지.

2003년 심장마비로 유명을 달리하지 않았다면 3편의 음악을 맡았을지도 모를 다이 하드 원조사운드 작곡가 마이클 케이먼(Michael Kamen)의 공석을 대신한 마르코 벨트라미는 무엇보다 케이먼이 확립해 놓은 다이하드사운드의 원형질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자신의 스타일을 최소화시킨 음악을 만들어냈다.

<스크림>시리즈를 비롯해 <헬보이>, <오멘>, <블레이드2> 등의 공포에 바탕을 두면서 액션을 강조하는 영화의 음악을 주로 담당해온 벨트라미는 이번에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내세우기보다 기존의 원형 사운드를 본질로 삼아 프랜차이즈상품 특유의 전형성을 유지하는 데 중점을 둔 거다.

오프닝트랙 ‘Out of bullet’에서부터 이를 확연히 감지할 수 있는데, 벨트라미는 케이먼의 타이틀테마와 모티프들을 영화의 전후 문맥에 따른 음악작법에 적합하게 활용했다. 인간의 분노와 멜로드라마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사운드를 스코어링 해 관객들이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토록 만드는 케이먼 음악의 특징적 스타일을 충실히 재현해낸 것.

두툼한 저음과 신경질적으로 날카로운 고음이 번갈아 교차하는 금관악기와 날뛰는 퍼커션이 조성하는 지속적 불안감을 중심으로 현악군의 신비롭고 드라마틱한 오스티나토(ostinato)연주로 확장되며 활력과 긴박감을 환기하는 오케스트레이션을 통해 전매특허 다이하드 사운드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원조 클래식사운드에 근거한 연주패턴은 사이버테러로 마비된 도시의 교통체증(Traffic jam), 침입(The breakin), 헬기추격(Copter chase), 전투기의 맹공(The F-35)장면 등에서 재연 또는 다채롭게 변주되어 나오면서 열혈액션과 스릴로 점철된 영화의 전개를 돕고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감성적 토대를 구축해 준다.

결론적으로 벨트라미는 <다이하드 4>를 통해 원형사운드의 창시자 마이클 케이먼에게 경의를 표했다. <수퍼맨 리턴즈>의 존 오트만(John Ottman)이 그랬듯 모방적 창조가 낳은 또 하나의 좋은 전례로 남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