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Lonely Hour

Sam Smith / 2014.01.01 발매

Sam Smith [In The Lonely Hour]
새로운 목소리의 탄생


내 마음은 오픈 북


누군가의 일기장을 들여다보는 것은 일종의 모험이다. 보통은 주인의 허락이나 동의를 안 받는 행위일 때가 많고 그로 인해 자연히 스릴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이런 판에 영국 출신의 신예 싱어송라이터 샘 스미스(Sam Smith)는 자신의 첫 앨범 [In The Lonely Hour]를 두고 무려 '내 일기장'이라고 말하는 친구다. 그러면서 심지어 자기 손으로 펼쳐서 하나하나 보여주는 대인배기까지 하다. 그러나 '대인배'라는 평가는 그에게 맞지 않는다. 그가 몸소 이렇게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것은 그가 한없이 너그럽거나, 불치의 관심종자라서가 아니라, 그저 그렇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것이 누군가의 3, 4집쯤 되는 앨범이었다면 이 노래들이 아무리 이렇게 직선적인들 어디까지나 솜씨 있게 극화한 남의 이야기들, 캐릭터 플레이라 여겨져도 좋았을 것이다. 아니, 아무리 잘 봐줘서 소위 '자전적'인 스타일이라 말한다 해도, 그래도 이렇게까지 깡그리 다 털어놓을 필요는 없었다. 작년 영국을 삼킨 일렉트로닉 듀오 디스클로저(Disclosure)와의 반짝반짝 빛나는 조우 'Latch'와, 영국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한 노티 보이(Naughty Boy)와의 합작품 'La La La'로 바야흐로 그를 둘러싼 공기가 한껏 달아오르고 모두들 그의 목소리를 환영할 준비가 되어있는 상황에서, 이것은 마치 소개팅 첫 만남부터 진심을 와르르 털어놓는 대책 없는 순정남을 만난 것 같은 당혹스러움을 안긴다.


그런데 샘 스미스는 정말로 이 노래들이 전부 자신의 자전이며 자기 이야기가 맞다고 말한다. 음악 업계에 있는 닳고 닳은 사람들이 그런 자신을 아무리 못 믿겠다고 해도, 자신은 언제나 이렇게 느끼는 그대로 말을 하고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면 뒤에서 움직이는 게 익숙한 비즈니스 세상에서 이건 정말이지 만고에 쓸 데 없는, 때에 따라 약점도 잡힐지 모를, 빌어먹을 정직이라는 전략이다 ? 진정 이것을 전략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리고 이 '정직'이 이 앨범의 모든 것이다. 첫 곡(이자 두 번째 싱글) 'Money On My Mind'만 해도 그렇다. '계약서에 사인했을 때 나는...'이란 첫 구절부터 보다시피 최근의 샘 자신의 이야기다. 요약하면 자기는 돈이 아니라 애정 때문에 이 일을 한다는 건데, (아마도 그를 비아냥거렸을) 실제 업계 사람 누군가한테서 열 받았던 경험이 동기가 된 노래다. 아무런 은유도 아이러니도 없이 대놓고 감정을 드러내는 그의 이런 태도는 그 뒤를 잇는 열세 곡의 러브송까지 초지일관 지속되는데, 아까의 '일기장'론이 가능한 지점이다.


그런데 그 '러브송'이란 것들이 어째 다 수상하다. 정신 차리고 보니 전부 다 비극인 거다 ? 짝사랑('Good Thing' 'Not In That Way'), 말 못한/할 사랑('I've Told You Now'), 임자 있는 몸 사랑('Leave Your Lover' 'Like I Can'), 배우자의 불륜('I'm Not The Only One'), 하다못해 하룻밤의 불장난조차 자신은 서툴다며 그저 옆에 있어만 달라고 온기를 구하는('Stay With Me') 지경에 이른다. (그나마 질곡의 인연을 뒤로 하고 기꺼이 새 출발을 결심하는 'Restart'만이 유일하게 희망적이다.) 'In The Lonely Hour'란 타이틀도 의도적으로 단 것으로, 말하자면 샘 스미스의 대망의 첫 솔로 데뷔작은 의외로, 흡사 프랭크 시나트라의 전설적인 [In The Wee Small Hours]처럼, '외롭고 슬픈 실연가 모음집'이다. 이에 대해 샘 스미스는 '명색이 소울 팬인데 소울 팬답게 사랑 노래들을 부르고 싶었지만 이 영역에서 제 자신이 별로 좋은 경험이 없었더래서, 그러다 보니 죄다 보답 받지 못하는 사랑 노래만 잔뜩 들어갔네요'라고 너스레를 떤다.


정직(만)이 최선의 방책


그가 소울 팬이라는 건 발성에서부터 알아볼 수 있다. 특히 'Money On My Mind'나 'Latch' 등의 곡에서 메인 보컬뿐 아니라 코러스 파트까지 전부 그의 목소리였던 걸 보면 그의 팔세토 영역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 이 음역 얘기가 나오면 그가 꼭 하는 얘기가 있는데, 자신의 어머니가 휘트니 휴스턴이나 샤카 칸 같은 가수를 즐겨 들었고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그런 보컬들을 흉내 내는 데 워낙 익숙해져서 처음 노래를 연습할 때부터 그 음역에 고정되었다는 것이다. (믿기진 않지만 그가 남자 보컬 곡들을 듣기 시작한 게 불과 2, 3년 전부터라고 한다.) 그리고 아들의 재능을 일찍 알아본 그의 부모는 그에게 재즈 보컬 수업을 듣게 하고, 내처 그는 학생 뮤지컬 무대에도 서보는 경험을 한다.


그러나 2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지방에서 상경해 런던의 어느 바에서 고생하는 알바생에 불과했다. 그 와중 틈틈이 마음이 맞는 몇을 매니저나 공동작곡가로 만나 함께 노래를 만드는 연습도 했지만, 그 모든 상황이 반전될 실마리를 준 것은 'Lay Me Down'에 이르러서였다. 지금은 이 앨범의 마지막 트랙이자 첫 싱글이지만, 원래 이 노래는 그의 초창기 (공동)작곡품이었다. 이 곡이 비공식적으로 2012년 경에 디스클로저의 귀에 들어가 결과적으로 'Latch'를 낳았고, 이 'Latch'를 들은 노티 보이가 다시 샘 스미스를 수소문해 'La La La'를 맡긴 것이다. 그의 경력의 시발점이 된 이 곡은 올 3월에 미국의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SNL) 무대에서 그가 'Stay With Me'와 함께 라이브로 연주한 두 곡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렇긴 해도, 그를 스타덤으로 견인한 디스클로저와의 'Latch'와 노티 보이와의 'La La La'가 모두 비트 있는 넘버들이어서 샘 스미스의 독집도 그런 댄스계 피처링 보컬리스트의 경쾌한 느낌이 살아있을 거라 생각한 사람들에게, 이 앨범은 꽤 뜻밖일 것이다. 그나마 리듬감이 있는 건 'Money On My Mind', 'Like I Can'정도이고('Restart'과 'La La La'의 경우 오리지널 리스팅에는 들지 않는 보너스 트랙들) 나머진 모두 너무 신실해서 어처구니가 없는 애절한 소울 발라드들인 것이다. 샘 자신의 말을 빌면 그는 디스클로저와의 만남 이전까진 댄스 뮤직에 아무런 연관도 관심도 없었다. 그는 디스클로저와 노티 보이 유명세에 이어 올해 브릿 어워드 평론가상과 BBC 올해의 사운드 1위까지 따내면서 자신에 대한 수요가 급상승+최고치에 이르렀던 타이밍을 놓칠세라 덜컥 데뷔작을 내놓는 성급함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부르고 싶은 곡이 쌓이고 그것들이 마음에 드는 상태가 될 때까지 충분히 다듬었고, 천천히 시동을 걸었다. 덕분에 혹자에 따라서는 댄서블하지 않거나 훅이 약하다는 평을 내릴 수도 있겠지만, 이 앨범에서 오로지 관건이 되는 것은 최대한 날것 그대로 부각된 그의 목소리, 그리고 그 목소리가 실어내는 비현실적인 정직성이다. 사람들의 기대치를 만족 못 시킬까봐 걱정되진 않느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아뇨, 하나도. 만약 제가 아직 앨범을 완성하기 전이라면 무지 떨리고 불안하겠지만, 이렇게 다 만들고 보니 저 자신이 얼마나 이걸 열심히 만들었는지 알고 또 이 노래들이 정말 뿌듯하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습니다. 너무 제 사적인 노래들이라 혹시 사람들이 맘에 안 든다고 해도 그저 내 일기장을 싫어하는 정도로만 느껴질 것 같아요. 사람들이 뭐라건 이 노래들이 작년에 제가 겪은 감정 100퍼센트 그대로라 어떻게 다른 걸로 바꿀 수도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저를 보여주기 위해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습니다."


140521. 성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