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nny Goodman
남성/솔로
빅 밴드의 리더이자 클라리넷 주자로서 30-40년대 재즈계를 풍미했던 베니 굿맨(Benny Goodman)은 '스윙의 왕'이라는 칭호를 얻을 만큼 스윙 시대에 있어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1909년 뉴욕에서 태어난 베니 굿맨은 10살 때부터 클라리넷을 배우기 시작하여 16세가 되던 해 벤 폴락(Ben Pollack) 밴드에 가담하면서 본격적인 연주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28년 그의 첫 리더작인 [A Jazz Holiday]를 발표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는 29년 뉴욕으로 이주하여 다른 아티스트들의 레코딩과 브로드웨이(Broadway) 뮤지컬작업에 참여하며 음악활동을 이어갔다. 이후 본격적으로 자신의 밴드를 결성하여 활동에 나선 베니 굿맨은 31년 스크래피 램버트(Scrappy Lambert)가 부른 'He's Not Worth Your Tears'가 대히트를 거두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다. 34년 라디오 쇼에 고정 출연하는 기회를 얻으며 인기를 더해갈 수 있었던 베니 굿맨은 36년에는 자신의 쿼텟을 결성하여 활동하기도 했으며 37년부터는 다시 빅 밴드를 결성하여 활동을 시작했다.
38년에는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라이오넬 햄프턴(Lionel Hampton),레스터 영(Lester Young)등의 당대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들과 함께 카네기 홀(Carnegie Hall)에서 라이브를 펼쳐 아낌없는 찬사를 얻어냈으며 39년에는 기타리스트 찰리 크리스찬(Charlie Christian)과 함께[Featuring Charlie Christian]을 발표하여 좋은 반응을 얻어냈다. 이후 섹스텟(sextet)을 결성하여 브로드웨이 뮤지컬'Swingin' the Dream'에도 참여했던 베니 굿맨은 계속해서 히트 싱글을 발표하며 한동안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44년 재정적 어려움으로 밴드를 해체하고 만 베니 굿맨은 'Sweet and Low-Down'이라는 영화에 참여하여 화제를 불러모았으며 45년에는 [Hot Jazz]라는 자신의 컴필레이션 앨범을 발표하여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 이후 다시 빅 밴드를 결성하여 활동에 나선 베니 굿맨은 'Gotta Be This or That' 'Symphony'와 같은 곡을 히트시키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으나, 49년 다시 밴드를 해체하고 말았다. 50년대 접어들어 재즈계에 비밥(Bebop)의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베니 굿맨은 예전과 같이 커다란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54년 발표했던 [B.G. in Hi-Fi], 58년의 [Benny in Brussels, Vol. 1,2], 63년의 [Together Again! (1963 Reunion with Lionel Hampton, Teddy Wilson & Gene Krupa)]등이 나름대로 좋은 반응을 얻었으나, 역시 당시 재즈계의 흐름을 바꿔 놓을 수는 없었다. 그는 70년대 중반까지 꾸준한 활동을 벌였으며 86년 화려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77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