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ck Drake
남성/솔로
영국 출신 Folk / Folk Rock 싱어송라이터, Nick Drake (닉 드레이크)
(1948.6.19-1974.11.25)
모던 록 팬들이라면 분명히 기억한다. 벨 앤 세바스천이 중심이 된 세기말 포크의 '작은 혁명'을.
그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닉 드레이크라는 숨은 거장과 조우하게 된다. 명문 케임브리지를 다녔던 그는 단 넉 장의 앨범만을 남긴 채, 스물 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등진 브리티시 포크(British Folk)의 천재 뮤지션이다. 젊음의 병적 우울과 어두운 정서를 담고 있는 그의 음악은 생전에는 전혀 빛을 보지 못했으며 사후에야 사료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으며, '90년대 말, '포크 리바이벌'을 통해 나이 어린 마니아들로부터 뒤늦게 재평가되고 있는 중이다.
1948년, 부모가 버마 여행 중이었던 관계로 랑군(Langoon)에서 태어난 닉은 2살 때 가족들과 함께 본국인 영국으로 이주하게 된다. 이후 장성해 캠브리지(Cambridge) 대학에 입학한 그는, 팀 버클리(Tim Berkeley)나 밴 모리슨(Van Morrison) 등의 음악을 들으며 여가를 보내는데 그치지 않고 대학 내에서 몇 차례의 라이브 무대를 가지며 수줍게나마 자신의 곡을 청중 앞에 선보이곤 했다. 이런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프로듀서 조 보이드(Joe Boyd)는, 1969년 닉의 데뷔앨범 [Five Leaves Left]의 제작을 적극 지원하였다. 이 앨범은 평론가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으나, 대중적으로는 거의 알려지지 못한 채 잊혀지고 만다. 이 앨범의 실패에는 공연활동을 매우 탐탁치 않게 생각했던 닉의 낯가림 심한 기질도 어느 정도의 원인을 제공하였다.
1970년 닉은 가일층 화려해진 사운드의 2집 [Bryter Layter]를 공개하였지만, 닉의 오랜 동료인 페어포트 컨벤션(Fairport Convention)의 멤버들과 함께 작업된 이 앨범 역시 전작과 다를 바 없는 반응을 얻는데 그치고 만다. 연이은 앨범의 참패로 닉은 정상적 생활이 어려울 정도의 심한 우울증을 겪게 되며, 설상가상으로 조 보이드마저 이즈음 닉의 곁을 떠남으로써 닉의 절망감을 증폭시키게 된다. 1972년 닉은 미니멀한 사운드의 3집 [Pink Moon]을 발표하였고, 이 앨범 역시 저조한 판매고를 기록하였다. 닉은 이후 녹내장까지 발병하는 통에 우울증이 더욱 악화되었고, 결국 자신의 심리상태를 제대로 추스리기 힘든 지경까지 치닫고 만다. 이 기간에도 몇 곡을 더 녹음하긴 했지만, 앨범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분량은 되지 못했다.
1974년 11월 25일, 당시 26세에 불과했던 닉은 자신의 부모 집에서 약물과용으로 숨진 시체로 발견된다. 그의 사인은 공식적으로 자살이라고 발표되었지만, 실제로 자살인지 사고 사인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얼마간의 논란이 있었다. 닉이 생전에 남긴 3장의 앨범은 사후에 재평가되었으며, 훗날 그의 이름은 영국 포크 역사상 가장 훌륭한 싱어송라이터 중 한 명으로 자주 거론되기도 했다. [남겨진 다섯 잎들(Five Leaves Left)], [분홍빛 달(Pink Moon)] 등 앨범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곡들도 다분히 문학적이며, 그것을 표출하는 그의 목소리는 그 못지 않게 진지하고 사색적이다.
언제나 약에 절어 지내던 그는 마치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듯 1974년 그의 방 침대 위에서 사인 불명의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천재는 하늘이 데려간다지만, 너무나 때 이른 죽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