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yan Ferry
남성/솔로
브라이언 페리가 재적했던 록시 뮤직(Roxy Music)은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음악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해준 글램/아트 록 밴드다. 초기에 그룹은 그와 키보디스트인 브라이언 이노(Brian Eno), 둘의 빛나는 파트너십 덕택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길 수 있었다.
두 뮤지션간의 상이한 음악적 방향성이 긍정적인 긴장감을 형성하며 [For Your Pleasure](1973)와 같은 걸작을 잉태할 수 있었다는 얘기이다. 당시 브라이언 페리는 미국풍의 소울과 아트 팝에, 브라이언 이노는 벨벳 언더그라운드로부터 대물림되어온 록 해체주의에 경도되어 있었다. 그러나 종국에 이 견해차는 브라이언 이노의 탈퇴에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했고 브라이언 페리는 홀로 록시 뮤직을 지켜냈다. 최초의 영국 차트 넘버 원 앨범 [Stranded](1973)와 디스코 리듬을 차용한 싱글 'Love is the Drug'를 미국 차트 40위권에 올려놓았던 명반 [Siren](1975)등이 그 때의 증거물들이다. 동시에 그는 솔로 커리어도 병행해나갔다. 커버곡들로 빼곡이 채운 1973년의 처녀작 [These Foolish Things]를 비롯해 팝과 R&B를 뒤섞은 이듬해의 2집 [Another Time, Another Place](1974) 등이 홀로서기의 초반을 빛내주었다.
이후 1983년 록시 뮤직이 공중 분해된 뒤에도 브라이언 페리는 데이빗 길모어, 마크 노플러 등의 대가들과 함께 한 1985년의 [Boys And Girls], 풍부한 재즈적 감수성을 뽐낸 1999년의 [As Time Goes By], 커버와 오리지널곡을 함께 실었던 2002년의 [Frantic] 등, 일련의 LP들을 통해 개성 만점의 보컬로 무장한 수준 높은 음악성을 들려주었다. 무엇보다 타인의 곡을 자신만의 사운드트랙으로 주조해낸 탁월한 리메이크 레퍼토리들이 일품이었다.
브라이언 페리는 완벽한 비상업적 뮤지션이었다. 허나 그가 이룩해낸 음악적 업적들은 차트 중심의 겉보기 등급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다. 또한 오랜 세월 별다른 부침 없이 꾸준한 창작 활동을 지속해온 뮤지션이 드문 세상 속에서 그의 존재는 더욱 광채를 발한다. 브라이언 페리가 '아티스트'로 평가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