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ynton Marsalis
남성/솔로
정통 재즈계의 슈퍼 스타인 트럼펫 연주자 윈튼 마살리스(Wynton Marsalis)가 1961년 10월 18일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났다. 피아니스트인 아버지 엘리스(Ellis), 색소폰 연주자인 형 브랜포드(Branford), 동생들인 델피요(Delfeayo:트롬본)와 제이슨(Jason:드럼) 등과 재즈 패밀리로도 널리 알려지기도 한 윈튼 마살리스는 내한 공연을 통해 한국 팬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인물이다(그의 이름은 피아니스트 윈튼 켈리를 따서 지어진 것이다).
1980년대 이후 나타난 재즈 뮤지션 중 아마도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기도 한 윈튼 마살리스는 데뷔 초기부터 주목을 끌었다. 마살리스의 등장은 당시 별반 재즈에 관심을 보이지 않던 레이블들까지 젊은 재즈 뮤지션들에 주목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왔다.
처음 재즈 메신저스(Jazz Messengers)의 일원으로 활동을 시작한 윈튼 마살리스는 당시만 해도 프레디 허버드(Freddie Hubbard)의 영향을 보여주었는데 자신의 그룹 윈튼 마살리스 퀸텟의 리더로 활동하면서는 그의 연주에서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의 영향력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90년 앨범 [Tune in Tomorrow]에 이르러서는 자기 자신의 스타일을 찾기 시작했다. 루이 암스트롱 등의 초기 재즈 스타일을 받아들이고 뮤트(mute)를 사용하는 등의 변화를 보여주며 독창적 스타일을 지닌 연주자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아버지 엘리스의 고용주였던 앨 허트(Al Hirt)에게서 여섯 살 때 트럼펫을 선물받은 그는 클래식과 재즈를 공부하고 로컬 고적대와 펑크(funk) 밴드, 오케스트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했다. 고등학교 시절 오케스트라(New Orleans Civic Orchestra)에서 처음 트럼펫을 분 그는 줄리어드 음악원에 진학해 아트 블레이키의 빅 밴드와 재즈 메신저스 등에서 함께 레코딩에 참여했다.
줄리어드에 진학한 다음 해인 1981년, 벌써 그는 재즈 뮤직계의 화제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 후 허비 행콕, 아트 블레이키 등과의 작업을 계속한 뒤 'Columbia'와 계약을 맺고 자신의 리더 데뷔작을 발매하게 된다. 불과 스물한 살 때인 1982년 마살리스는 형 브랜포드 등을 가담시켜 자신의 퀸텟을 조직해 활동했고 각종 상을 휩쓸며 주목받는 연주자로 군림한다.
형 브랜포드가 그룹에서 탈퇴한 뒤 피아니스트 마커스 로버츠(Marcus Roberts) 등을 가담시켜 다시 밴드를 구성하는데 이 밴드는 나중에 4대의 관악기가 포함된 7중주단으로 발전하게 되고 1995년까지 밴드 활동을 계속하게 된다.
1997년엔 3장짜리 CD 세트인 [Blood On The Fields]를 발매해 퓰리처상에서 최초로 재즈 레코드로 상을 받기도 한다. 이제 40대에 접어든 비교적 젊은 연주자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20여 년 동안 활동해 온 오랜 경력을 지닌 그는 재즈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커다란 영향력을 지닌 정통주의 연주자로 각광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