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n Webster
남성/솔로
1909년 3월 미국 캔사스에서 태어난 벤 웹스터는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이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버드 존슨(Budd Johnson)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했던 그는 레스터 영의 가족으로 구성된 밴드였던 영 패밀리(Young Family)에 가담하면서 전문적인 연주자로의 길을 걷게 되었다.
콜맨 호킨스(Coleman Hawkins), 레스터 영(Lester Young)과 함께 초기 재즈 색소폰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벤 웹스터는 특유의 감성적이고 풍부한 음색의 연주로 많은 후배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아티스트였다.
웹스터는 뛰어난 발라드 플레이어다. 음을 길게 늘일 때 사용하는 비브라토는 매우 독특했다.
템포가 빠른 곡에서 거친 후두음이 나오기도 했다. 부드러운 레가토 사운드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는 발라드를 연주할 때 사용했다.콜맨 호킨스처럼 큰 사운드로 솔로의 공간을 음으로 꽉 채워 넣는 스타일이었다.
30년대에 베니 모튼(Bennie Moten) 악단과 앤디 커크(Andy Kirk) 밴드를 거치며 뛰어난 연주력을 인정받게 된 벤 웹스터는 34년 뉴욕으로 이주하여 플레처 핸더슨(Fletcher Henderson), 베니 카터(Benny Carter), 캡 캘로웨이(Cab Calloway) 등의 뮤지션과 활동하며 자리를 잡아 나갔다.
39년 듀크 엘링턴 악단에 가입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비록 4년간의 짧은 시기였지만 이 시기는 엘링턴 밴드의 최전성기여서 수 많은 명곡들이 나오는데 기여했다. 이후 43년 듀크 엘링턴을 떠나 한동안 소규모 그룹과 플래처 헨더슨 악단에서의 활약과 함께 솔로 아티스트로서 공연과 레코딩에 치중하며 꾸준한 활동을 벌였고, 48년에는 다시 듀크 엘링턴의 앨범에 참여하여 좋은 연주를 들려주었다.
53년 버브(Verve)와 계약을 맺고 피아니스트 오스카 피터슨(Oscar Peterson), 베이시스트 레이 브라운(Ray Brown), 알토 색소포니스트 베니 카터(Benny Carter) 등이 참여한 [King of the Tenors]를 발표함으로서 재즈팬들의 주목을 끌었던 벤 웹스터는 54년에도 [Consummate Artistry of Ben Webster]와 [Music For Loving] 앨범을 발표하며 그 특유의 감성적인 발라드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57년 발표한 [Soulville]은 벤 웹스터의 대표작 중 하나로 역시 오스카 피터슨(Oscar Peterson), 베니 카터(Benny Carter), 레이 브라운(Ray Brown)이 참여하여 뛰어난 연주를 들려주었던 작품이다. 59년에는 바리톤 색소폰 주자 제리 멀리건(Gerry Mulligan)과 함께 한 [Meets Gerry Mulligan]과 콜맨 호킨스, 로이 엘드리지(Roy Eldridge)등이 참여한 [Ben Webster and Associates]를 발표함으로서 재즈 팬들을 열광시켰다.
이후 한동안 빌리 홀리데이(Billy Holiday), 엘라 피츠제랄드(Ella Fitzgerald) 등의 보컬리스트와 함께 순회공연 활동을 벌였던 벤 웹스터는 그 후에 유럽에서도 여러 차례 투어를 펼치며 팬들에게 사랑받았고 계속해서 [See You at the Fair], [Meets Bill Coleman], [Ben Meets Don Byas] 등의 앨범을 발표하며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69년에는 평소 존경의 대상으로 삼았던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에 대한 트리뷰트 앨범인 [For the Guv'nor]를 발표하여 좋은 평가를 얻었으며 72년에도 [Makin' Whoopee]란 앨범에서 따뜻한 연주를 보여줌으로서 재즈팬들의 가슴을 적셔주었지만 안타깝게도 73년 9월 숨을 거두고 말았다.
노만 그랜츠(Norman Grantz)와의 환상 콤비로 풍부한 감성과 서정적인 연주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었던 벤 웹스터는 항상 변하지 않는 아름다운 연주로 많은 재즈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아티스트였으며 후일 많은 후배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감성적인 발라드 연주의 표본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