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tislav Rostropovich
남성/솔로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Mstislav Rostropovich, (1927.3.27-2007.4.27) 아제르바이잔,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라는 이름은 첼리스트의 이름을 뒤지다 보면 두 사람이 등장한다. 므스티슬라브와 레오폴드(1892~1942) 부자가 그들이다.
아버지 레오폴드는 카잘스의 제자였다. 그리고 므스티슬라브의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였다. 핏줄 탓인지 환경 탓인지 므스티슬라브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음악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다. 4세때 폴카를 작곡해 스스로 연주했다. 5세 때는 집안이 모스크바로 이주했다. 레오폴드는 모스크바 방송 교향악단에서 연주하며 그네신 음악원에서 가르쳤다. 므스티슬라브도 그곳에서 코졸루포프에게 배우기시작했다.
10세 때인 37년, 레오폴드와 오케스트라 연주여행에 동행했던 그는 최초로 협연의 기회를 잡았다. 1941년, 14세의 나이로 첼로와 피아노과를 동시에 졸업한 그는 이듬해 아버지 레오폴드를 잃었다. 당시 레오폴드의 나이 50세에 불과했다. 므스티슬라브는 15세의 나이로 아버지의 첼로 클래스를 물려받았다. 그는 10대 후반에 이미 쇼스타코비치,프로코피예프 등을 스승이자 동료로 두었다.
모스크바 필과 연주 여행을 다녔고, 10년 이상위인 리히테르를 독주회 반주자로 두었으며, 길렐스, 코간과 피아노 트리오 활동도 했다. 1945년 모스크바 콩쿠르를 시작으로 프라하, 바르샤바, 부다페스트에서 콩쿠르를 석권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로스트로포비치라 하면 사람들은 모두 레오폴드를 떠올리기보다 므스티슬라브를 떠올렸다. 카잘스에 비한다면 로스트로포비치의 젊은, 아니 어린 시절은 '화려한 인생' 그 자체였다. 그가 어린 시절 피아노를 병행해 공부했다는 사실에 주목해 보자.
그는 훗날 부인인 소프라노 가수 갈리나 비슈네프스카야의 독창회반주를 암보로 연주할 정도로 전문 피아니스트 수준을 지니고 있다. 물론 이는 지휘자로서도 큰 도움을 주는 것이지만 처음 첼로의 길을 걸을 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협주곡에서 독주악기로 오케스트라와 대적할 때, 그의 연주는 특히 빛을 발한다. 이는 첼로로써 피아노가내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의도했기 때문이다. 유리처럼 딱딱하고 금속적인 소리에서 돌변해 꿈꾸듯 부드러운 소리를 내고, 어떠한 어려운 기교도 악상에 맞게 소화해 내는 연주. 아버지 레오폴드를 통해 내려온 카잘스의 주법이 므스티슬라브에 이르러, 약 50년 만에 다시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도약하게 된 것이다.
'그의 연주는 초인적이다', '그는 첼리스트가 아니다. 자연현상이다' 라는 찬사를 받았고, 그를 아는 거의 모든 작곡가는 그에게 앞다투어 곡을 헌정했다. 그의 레퍼토리가 현대곡에 폭넓게 포진해 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거꾸로 그의 폭넓은 표현력과 강렬한 연주 효과는 작곡가들에게 첼로 협주곡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게 했다. 그렇다고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가 현대곡에서만 빛을 발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초인적인 연주만큼 그의레퍼토리도 초인적으로 넓다.
1956년부터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가 된 그는 구소련에서 인권운동을 펼치던 노벨상 수상작가 솔제니친을 옹호한 죄로 시민권을 박탈당하고 추방당했다. 이 또한 정치와는 무관한 인류애의 발로였다. 따라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그 앞에서 연주하던 그의 모습이 전혀 쇼나 이벤트로 비치지 않은 것이다.
이후 그는 미국을 근거지로 활동하며 지휘자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했다. 이전에도 그의 연주 모습을 보면 협연석에 앉아 오케스트라를 향해 몸으로 얘기하는 듯한 동작을 자주 취하곤 했다. 몸속에 정열이 끓어오르던 그는 지휘자의 길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안탈 도라티의 후임으로 1977년부터 워싱턴 내셔널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가 된 그는 이후로도 첼로와 지휘를 병행하며 양쪽 어느 하나 허술함이 없었다.
그가 지휘한 텔덱 레이블의 음반중에는 이미 수작으로 거론되는 음반들이 상당수 있다. 특히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이나 바이올리니스트들과의 협연 음반들이 좋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아끼고 아낀 끝에 92년에 녹음(EMI)했다. 새로운 해석을 많이 시도해 '장고 끝에 악수'라는 평을 듣기도했지만 아직 평가를 내리기는 성급하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