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rles Munch
남성/솔로
1891년 프랑스 알사스의 스트라스부르에서 독일계 집안에서 태어난 뮌슈는 오르간 주자이자 합창단 지휘자였던 아버지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스트라스부르 음악원 입학하여 작곡가인 피츠너의 지도를 받았다.
1912년 뮌슈는 파리 음악원에서 뤼시앙 카페에서 바이올린을 배웠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독일군으로 참전하게 되지만 부상으로 제대하였다. 종전 후, 1919년에는 고향 알사스로 돌아와 스트라스부르 오케스트라의 콘서트 마스터로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스트라스부르 음악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0년경부터는 베를린에서 프레슈에게 바이올린을 다시 배우면서 바이올린 솔리스트로 경력을 쌓아 나갔다. 라이프치히 음악원 바이올린 교수직과 함께 1926년에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콘서트 마스터로 취임하였으며 이때쯤에 푸르트벵글러와 브루노 발터에게 지휘법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1932년 11월, 파리에서 스트라람 오케스트라를 지휘함으로써 지휘자로 성공적인 공식 데뷔무대를 가졌다. 데뷔무대의 성공으로 이 오케스트라의 객원 지휘뿐만 아니라 국외로부터 객원 지휘자로 초대를 받기 시작하였다. 1935년에 소시에테 필하모니라는 오케스트라를 조직하여 상임 지휘자로 활동하였고 1938년부터 1946년까지 파리 음악원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로 활동하였다.
1946년 12월에는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객원 지휘자로 미국무대에 데뷔를 하였으며 1948년 프랑스 국립방송 오케스트라와 함께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49년에는 별세한 쿠세비츠키의 후임으로 보스턴 심포니의 상임 지휘자로 취임하여 1962년까지 13년간에 미국 제일의 명문 오케스트라의 제2의 황금 시대를 구축하였다. 보스턴 심포니의 상임 지휘자에서 물려난 1967년 파리 음악원 오케스트라가 파리 오케스트라로 새로 발족될 때 초대 음악 감독으로 큰 역활을 하였다.
1968년 가을 파리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미국에서의 연주 여행중 11월 6일에 버지니아 주 리치먼드에서 심장 발작으로 사망하였다.
그의 지휘는 만년이 되어도 움직임이 격렬하고 다이내믹하였으며, 선은 굵고 표정은 신선하였다. 그러면서도 프랑스풍으로 세련되어 있었다. 레퍼토리는 고전에서 현대 음악에 이르기까지 극히 넓었는데, 그 중에서 특히 베를리오즈, 생상스, 라벨 등 프랑스 작곡가의 작품 연주에 우수한 것이 많았다. 또한 베토벤, 브람스, 슈만 등의 독일 음악 연주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것은 그의 혈통에서 볼 때 당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