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liner Philharmoniker
혼성/오케스트라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 중 하나로 꼽히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Berlin Philharmonic Orchestra)는
그 시작부터 지금까지 민주적인 자치제도로 운영되고 있어서 지금도 상임 지휘자, 오케스트라 매니저, 오케스트라 단원을 모두 단원들의 투표에 의해 선정한다.
선정된 단원은 1년간의 수습 기간을 거친 뒤에 정단원이 되며, 10년간 일한 단원은 연금 혜택을 받는다. 베를린 필은 1년에 약 100회의 콘서트를 하는데 외국 연주도 많이 한다. 운영은 콘서트 티켓 판매, 음반 녹음, 방송 등을 통해 얻는 수입으로 충당한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1862년 벤야민 빌제(Benjamin Bilse)가 만든 빌제의 악단(Bilsesche Kapelle)이 그 시작이다.
독일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세계적인 최고의 오케스트라 중 하나. 현재 상임 지휘자로는 사이먼 래틀(Simon Rattle)이 맡고 있으며, 몇 개의 챔버 뮤직 앙상블을 지원하고 있기도 하다.
베를린 필은, 1882년 봄, 54명의 연주인들에 의해 'Former Bilse's Band'라는 이름을 갖고 결성됐는데 이전 지휘자였던 벤자민 빌스(Benjamin Bilse)에 의해 깨진 후, 1887년 현재의 이름을 갖고 다시 조직이 결성됐다. 새로운 오케스트라의 모습을 갖춘 후 첫 지휘자로는 루드비히 폰 베르너(Ludwig von Bernner)였고 이후부터 유명 지휘자들이 함께하면서 오케스트라의 명성이 점점 높아졌는데, 한스 리히터(Hans Richter), 리처드 스트라우스(Richard Strauss), 구스타브 말러(Gustav Mahler),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등이 몇 년 동안 오케스트라를 거쳐갔다.
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리더가 몇 번씩이나 바뀌었지만, 오케스트라의 공연은 지속됐다. 프르트벵글러(Furtwangler)
이후, 1945년에는 레오 보카드(Leo Borchard)가 지휘자로 왔지만 몇 달 가지 못했는데, 그는 베를린을 점령했던 미군에 의해 사살 당했다. 1952년에는 푸르트뱅글러가 다시 돌아왔으며, 1954년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오케스트라를 맡았다.
1989년, 죽음을 목전에 둔 겨우 몇 달 전까지 지휘를 맡았던 카라얀(Herber von Karajan)과 함께였던 오케스트라는 성공가도를 달렸다. 그의 임기 동안, 오케스트라는 방대한 분량의 레코딩을 했으며, 전 세계 투어를 지속했다. 카라얀 이후에는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가 맡았으며, 오케스트라의 레퍼토리는 한층 더 넓어졌다.
뒤이은 사이먼 래틀(Simon Rattle)은 오케스트라가 재정적인 의사결정이나 멤버들이0 권한을 가진, 자치조직으로 전환할 것을 조건으로 하며 계약했는데 이는 2001년에 승인을 받고, 2002년까지 그는 지휘자로 발탁되게 된다. 현 지휘자는 미국인 파멜라 로젠베르크(Pamela Rosenberg)가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