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라디오를 켜고
시나위 / 1986.03.01 발매
'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초반에 이르는 시기 공연 문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들국화나 이승철의 독특한 카리스마로 인기를 얻었던 부활 등 거물급 그룹들 외에 시나위, 작은 하늘, H2O, 백두산, 블랙홀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헤비 메탈 군단들은 한국 음악 시장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었다. 적어도 이들의 등장 이후로 '헤비 메탈'이라는 장르의 음악은 일반 대중들에게도 그다지 낯설지 않은 음악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 위치하는 그룹이 바로 시나위이다. '86년 발표한 데뷔작을 필두로 최근까지도 꾸준히 앨범을 발표해온 시나위는 한국 록의 대부로 불리는 신중현의 아들 신대철에 의해 결성된 그룹이다. 신대철을 비롯해 김종서, 서태지 등 '90년대의 슈퍼스타와 임재범, 강기영, 김민기 등 '90년대 한국 록계의 중추적인 뮤지션들이 시나위를 거쳐갔다는 사실은 이 밴드가 록 신에서 얼마나 중요한 입지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잘 말해준다. 나는 처음 시나위라는 밴드의 음악을 들었던 때를 기억한다. 당시 이들의 히트곡 '크게 라디오를 켜고'가 FM의 가요 프로에서 소개되었을 때, 프로를 진행하던 여자 DJ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음악도 나오는군요' 하는 식의 말과 함께 이 음악을 '헤비 메탈'이라고 한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헤비 메탈이라는 장르 자체가 생소하게만 여겨지던 고교생에게 이 노래는 단지 '유치한 가사를 외쳐대는 시끄러운 음악'이었다. 이 곡과 '그대 앞에 난 촛불이어라', '잃어버린 환상' 등 데뷔작의 모든 곡들을 접한 것은 두 번째 앨범의 '새가 되어 가리'에 반하게 되고 난 후이다. 감수성 예민한 학생에게 다가온 이들의 사운드는 놀라움 자체였다. 이 앨범을 듣고 나는 헤비 메탈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어렴풋한 개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기타리스트 신대철이 만들어내는 리프는 당시로서는 정말 놀라운 것이었고, 지금은 어덜트 컨템퍼러리 성향의 가수로 전향한 임재범의 거칠게 내뱉는 강렬한 목소리는 많은 이들을 단숨에 사로잡는 마력적인 힘을 지니고 있었다. 전형적인 헤비 메탈 리프로 전개되는 '크게 라디오를 켜고'를 비롯하여 흥겨운 로큰롤 '남사당패'와 '젊음의 로큰롤' 등은 한국형 헤비 메탈의 출발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서정적인 '그대 앞에 난 촛불이어라'나 블루스에 기반을 둔 신대철의 기타 솜씨가 돋보이는 연주곡 '1월' 등 모든 곡들이 고른 수준을 보이고 있다. 물론 지금 들으면 약간의 아마추어리즘까지도 엿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열악한 녹음 기술과 제작 여건 속에서도 자신들의 음악 스타일을 확고히 표출한 이 앨범이 지니는 의미는 음악 이상의 것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최초의 정통 헤비 메탈 앨범'은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이 앨범 이후 수많은 밴드들은 록/메탈의 질적인 수준을 끌어올리려 노력했으며 장르의 상업적인 가능성을 점친 음반 제작사들까지 헤비 메탈에 대한 본격적인 지원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gmv 1999년 12월 김경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