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vis Costello
남성/솔로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엘비스 코스텔로의 겉모습은 버디 홀리와 마찬가지로 '모범생' 그 자체였지만, 전혀 종잡을 수 없는 뒤죽박죽 음악 여정을 밟았다는 점에서 그는 차라리 영원한 음악 방랑객이자 아웃사이더였다. 그는 자신의 밴드 어트랙션스(The Attractions)를 이끌고 [My Name Is True], [This Year's Model], [Armed Forces]를 공개하며 펑크에 중요한 발자취를 새겨놓았고, 이후 뉴웨이브를 거쳐, 레게와 R&B, 컨트리에까지 깊숙이 발을 담갔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노팅힐]에 삽입된 'She'와 같은 팝에까지 손을 뻗쳤다. 범위만 거대한 것이 아니라, 거의 완벽에 가깝게 모든 분야를 소화해냈다. 음악에 관한 한 그는 명민하고도 또 유능한 인물이었다. 이렇듯 다양한 음악 채널이 존재하지만 사람들은 우선적으로 엘비스 코스텔로하면 '펑크 로커'로서의 이미지를 연상한다. 그것은 그의 데뷔 시기가 섹스 피스톨스가 득세하던 펑크의 '황금시대'와 맞물린다는 점으로부터 도출된 생각이다. 하지만 '펑크'로 카테고리를 좁히더라도 그의 다재다능함이 축소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스리 코드'로 대변되는 펑크의 단순성을 자신의 풍부한 음악 소스 속에서 다채로운 형태로 변주해 나갔고, 또 진화시켰다. 그는 펑크의 과학자이자 파이오니어였다. 엘비스 코스텔로는 안주하는 것을 거부했고, 자신의 음악 수로가 한 곳에 고여 정체되는 것을 경멸했다. 그의 실험정신은 1990년대에 들어와 모던 록 팬들에 의해 크게 인정받았고 후대 언더그라운드 음악계에 미친 그의 업적도 속속 재발굴되고 있다. 변증법의 정신처럼 자기 혁신을 통한 도약의 차원에서 그의 음악을 조감하면, 그는 확실히 '음악 모범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