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n Getz
남성/솔로
스탄 게츠 Stan Getz, (1927.2.2-1991.6.6) 미국, 재즈 테너 색소폰 연주가
흔치 않은 백인 재즈 뮤지션으로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실력을 보인 그는 빅밴드에서 색소폰을 불며 활동을 해 나갔고, 16살 때인 43년 Jack Teagarden에게 픽업되어 밴드의 멤버로 첫 녹음을 하기에 이른다. 그의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Jack Teagarden의 연주는 이후 그의 색소폰 연주가 알토 톤의 부드러움을 연출해 내는데 큰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Jack Teagarden과 함께 활동하며 실력을 인정 받은 그는 이 때부터 유명세를 타며 당대 실력파 뮤지션들과 많은 연주를 하게 된다. 44년에는 Stan Kenton 밴드에서 연주했으며, 45년에는 Jimmy Dorsey, 45년 후반에는 Benny Goodman의 밴드에서 연주하였고, Benny Goodman과는 여러 장의 앨범 녹음을 하기도 하였다.
밴드 활동으로 실력과 지명도를 모두 쌓은 그는 46년 경부터 자신의 이름을 내 건 앨범들을 내기 시작했으며, 47년 부터는 Woody Herman의 밴드인 Second Herd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그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이 밴드에서 활동한 이후부터인데 Woody Herman은 Stan Getz, Zoot Sims, Herbie Steward, Serge Chaloff 네 명의 백인 색소폰 연주자들을 한 밴드 안에 모았고, 이들은 Four Brothers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며 현재까지 백인 재즈 뮤지션 중 가장 훌륭한 밴드로 기록되어지고 있다. 이후 Woody Herman이 밴드를 떠난 뒤 그룹은 Stan Getz에 의해서 주도 되었는데 49년 밴드가 해체되기까지 이들은 Westcoast-jazz의 발흥에 영향을 끼치며 뛰어난 연주를 선보여 나갔다.
50년대 이후 그는 솔로 뮤지션으로으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 나간다. 그는 Johnny Smith, Bob Brookmeyer, Norman Grants, Oscar Peterson, Bill Evans등 다양한 뮤지션들과 함께 연주하고 미국 동/서부, 유럽을 넘나들며 하드밥, 쿨 재즈, 스윙, 발라드 등 다양한 스타일의 연주로 정통 재즈 뮤지션으로서 깊이 있는 활동을 벌여 나간다. 50년대 활동은 이후 60년대의 엄청난 히트로 인하여 후대에 와서야 그 가치가 재조명되기도 하였는데 'Hamp And Getz', 'Diz And Getz', 'For Musicin Only', 'Stan Getz And Oscar Peterson', 'stan Getz And J.J.Johnson'과 같은 당시 앨범들은 명반으로서 손색없는 작품들로 평가되어지고 있다.
왕성한 음악적 활동에도 불구 그의 50년대는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이기도 했다. 그는 당시 약물 중독에 빠져서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하였고, 피폐해진 자신의 몸과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58년에서 60년까지 유럽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60년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이후 재즈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들이기 시작한다. Eddie Sauter's Orchestra와 함께 한 'Focus'를 내놓으며 자신의 미국 복귀를 알린 그는 미국의 쿨재즈와 브라질의 삼바 음악을 혼합한 Bossa Nova 음악을 세계 대중에게 선보인다.
62년 Charlie Byrd와 함께하면서 [Jazz Samba], [Big Band Bossa Nova],[Jazz Samba Encore]를 선보이며 성공을 거두어들이기 시작한 그는 63년 보사노바의 대부 격인 Antonio Carlos Jobim과 합작하며 [Getz/Gilberto]를 선보인다. Joao Gilberto/Astrud Gilberto 부부가 참여한 이 앨범에서는 'The Girl from Ipanema'가 초유의 대히트를 기록했고, 앨범 또한 현재까지 가장 많이 팔린 재즈 음반으로 자리하며 계속해서 기록을 깨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후 64년까지 두 장의 보사노바 앨범을 더 발표한 그는 이후 잠시 동안의 외도를 접고 다시 자신의 길인 정통 재즈 뮤지션으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이후 그의 행보 또한 '변신의 귀재'라는 그의 애칭에 걸맞게 한 장르나 한 스타일에 국한된 활동은 아니었다.
물론 보사노바를 통해 대중에게 너무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준 탓에 이후 그의 활동은 대중에게 큰 주목을 받지 못했고, Verve레이블을 떠나 여러 레이블을 돌아다니며 활동을 이어가야 하는 힘든 시절을 보내기도 하였지만 그의 활동은 70-80년대에도 꾸준히 이어졌고, [Gary Burton], [Bill Evans]와 같은 정통 재즈 뮤지션들과 함께 활동한 것은 물론이고, 퓨전 재즈 뮤지션인 Chick Corea와 같은 뮤지션과 함께 연주하기도 하였고, 90년에는 팝 그룹 Everything But the Girl의 음악에 세션으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50여 년의 긴 시간동안 활동하며 색소폰의 거장으로 자리했던 그는 1991년 6월 6일 암 투병 끝에 64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91년 그의 사후 마지막 앨범인 [People Time]이 발매되기도 하였는데 암의 고통과 싸우고 있던 그의 애절한 연주가 피아니스트 Kenny Barron과의 듀엣으로 담겨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