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ther Vandross
남성/솔로
가스펠과 소울 음악으로 풍성했던 가정에서 태어난 루더 밴드로스(Luther Vandross)는 3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 그는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 다이아나 로스(Diana Ross), 디온 워윅(Dionne Warwick)의 음악을 듣고 전율을 느끼게 된다. 1974년 데이빗 보위(David Bowie)는 그의 앨범 [Young Americans]를 작업하면서 루더에게 편곡과 백업 보컬을 부탁하게 된다. 그는 이후 데이빗의 투어에도 참여하게 되며 그를 통해 베트 미들러(Bette Midler)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베트의 앨범에도 참여하였으며 백킹 보컬리스트로 그녀와 함께 투어에 나섰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는 뮤직 비즈니스계에서 가장 유능한 세션 보컬리스트가 되었으며 이후 차카 칸(Chaka Khan), 링고 스타(Ringo Starr), 바브라 스트라이샌드(Barbra Streisand)와 도나 섬머(Donna Summer)와 같은 대형 가수들의 음반 작업에 참여하였다. 그의 이러한 활약을 눈여겨본 아틀란틱(Atlantic) 산하의 레이블 코틸리온 레코드사(Cotillion Records)는 그와의 계약을 서두르게 된다.
그는 1975년 진보적인 R&B 그룹인 자신의 밴드 루더(Luther)를 결성하고 두 장의 앨범 [Luther], [This Close to You]를 1976년에 발표하였다. 그러나 디스코를 배경으로 삽입시킨 이 앨범들은 실패로 끝나게 되었다.
루더는 다시 세션 작업을 시작하였으며 퀸시 존스(Quincy Jones), 패티 오스틴(Patti Austin), 그웬 거드리(Gwen Guthrie), 쉬크(Chic), 시스터 슬레지(Sister Sledge) 등과의 작업으로 확고한 자신의 자리를 굳혔다. 1981년 그는 에픽 레코드사(Epic Records)와 계약을 맺고 이번에는 솔로 앨범 [Never Too Much]를 발매하였다. R&B 차트 정상을 차지한 이 앨범으로 그는 성공적인 솔로 데뷔를 하게 되었다.
이후 세릴 린(Cheryl Lynn)과 'If This World Was Mine', 디온 워익과 'How Many Times Can We Say Goodbye?'를 불러 인기를 더욱 굳히게 되며, 'Stop to Love'와 그레고리 하인즈(Gregory Hines)와의 듀엣곡 'There's Nothing Better Than Love'가 R&B 정상을 차지하면서 위상을 확고히 다졌다.
최근까지의 일련의 앨범들은 그가 80년대와 90년대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소울 음악을 들려준 위대한 아티스트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여실히 입증해 주고 있다. 그는 가수로서 수많은 상을 수상하였을 뿐만 아니라 디온 워윅, 다이아나 로스,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의 앨범을 제작한 프로듀서로서도 이름을 떨쳤다.
지난 20여년간 당대 최고의 남성 R&B 가수라는 타이틀을 차지해온 루더 밴드로스는 2003년 4월 16일 뇌졸증으로 쓰러져 안타깝게도 오랜 투병끝에 2005년 7월 사망하였다.